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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155마일 민통선 DMZ관광개발에 발목잡는 발목지뢰





- 찾아가는 리얼 스토리 긴장감이 고조되는 스릴 전개
- 고성군 최북단 통일전망대는 열려있다.


수 없이 다니던 국외 오지여행을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어느덧 한 해를 덧없이 보내면서 국외여행을 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국내 여행을 몇 번 해봤지만 맹숭한 여행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여행을 준비했다. 새로움을 시도하거나 옛 것을 찾아내고자 동해바다와 해금강이 보이는 고성에서 시작, 강화도 교동도까지 동서횡단 겸 지뢰제거탐사 활동을 하기로 했다.
한국지리연구소 김기호 소장 일명 지뢰박사로 불린다
이번 탐사여행은 사단법인 녹색평화연합 / 한국지뢰연구소 김기호 소장님의 자문을 받아 진행하였다. 기쁨과 긴장의 연속적인 기회를 만들어 내고자 DMZ과 민통선을 넘나들며 앞으로 허락된다면 3회정도 나누어 실시간 탐사여행을 함께 떠나 보고자 한다.


1부 첫날밤은 청강정에서 머물고 동해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 고성에 도착했다. 고성 전망대는 개방되어 있다. 얼마전 북한에서 넘어온 사건으로 고성 통일전망대가 출입을 금지되다 다시 OPEN되었다. 그런데 이에 따른 검문이 깐깐해 졌다. 경계 실패하고는 통일전망대 관광객들에게 책임을 묻는 듯 출입자들에 대한 규제와 주위사항들이 더해졌고 언론차량을 통제하거나 DSL카메라등에 반입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들의 경계 실패에 대한 더 이상의 비난을 막기 위한 방안인 것 같다.


며칠 후 국방부는 지뢰 때문에 곧바로 민통선내 산을 뒤집고 다닐 수가 없어 수색이 지연된 것이라 뒤늦은 발표를 했다. 그럴만했다. 통일 전망대 가는 길이 곳곳이 지뢰 미확인 지역이라는 표시판이 있다. 이곳은 지뢰지역이고 작전지역이기 특히 민간이 신분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지역이다. 월남자는 지뢰밭을 돌아다니고도 무사했던 것이다.
아침에 흐려서 날씨를 우려했지만 고성전망대에서 서니 하늘은 청청했다. 멀리 금강산 일부가 선명히
DMZ 넘어 북한 해금강을 가르키는 필자
보였고 금강산 줄기는 바다로 향한 해금강은 환히 들어나 있었다. 나는 1998년 11월 28일 금강산을 향한 첫 출항인 현대 금강호를 타고 장전항으로 출발, 최연소로 참가한 5살인 아들과 함께 금강산을 방문했었다. 최연소 참가자 아들덕에 당시 정주영 회장을 만나고 "전국노래자랑"이 선상에서 이루어지면서 송해씨도 만나고 장전항에 도착한후에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문화재청장까지 지낸 윤홍준 명지대 교수와 룸메이트처럼 함께 금강산. 비룡폭포. 만물상. 해금강 등을 함께 여행했다.

이후 2003년 부터는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으나 2008년 7월 대한민국 국적 관광객이 조선인민군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강산 여행은 중단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금강으로 가는 해안선가에는 철도가 놓여져 있다

이 철도는 언제 이용되려나 아련한 기대를 해봤다. 문득 이 철도는 어디로부터 이어져 왔다 하는 생각이 들어 철로 길을 추적하기로 했다,. 즉석에서 이번 탐사여행에 옛 철도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과제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 최북단 역은 어디일까?


고성 전망대를 뒤로 하면서 철도노선을 찾아보니 동해북부선인 최북단 제진역을 만날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북단 역은 제진역으로 되어있다. 제진역 위치는 동해 북부선 의 초구역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1950년 폐지되었고 민통선 이북이라 허가가 있어야 들어갈 수가 있다.

철도가 끊어진지 54년, 1924년 개통한 동해북부 선은 6.25 한국전쟁 이후에 군사 분계선이 그어지고 1967년 양양과 속초구간도 폐지되어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재진역을 출발하면 북한 쪽 첫 번째 역인 감호역으로 향하게 된다. 이어서 현재 북한에서 지명된 금강산청년역을 지나면 실제 고성군 고성역은 북한의 장전읍에 위치하고 있다. 6.25이전에는 38선으로 갈라져 고성군은 북한 쪽이고 금강산을 접하고 있었다. 당시 속초시, 양양군, 설악산도 북한땅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설악산은 아주 쪼끔 금강산을 닮아있으니 금강산을 못 가보신 분들을 위해 설악산을 추천한다. 그러나 빼어나 금강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산맥뒷쪽에 흐리게 보이는것이 금강산이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다운. . . ♪♬♩♩♬ 금강산에서 멋진 암벽들은 김일성 찬양 글, 노래등과 어록이 곳곳에 붉은 글씨로 집채만하게 새겨져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을 조각한 러시모어(Rushmore)산과 비교하면 아름다움 보다는 주체사상의 이념적 글들로 가득차 있었다. 남북출입국사무소를 겸한 고성군 제진역은 고성통일전망대를 가기 전에 민통선내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와 한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제진역은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에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경로로 두 차례 상봉 모두 동해도로남북출입사무소를 거쳐 가지만 철도는 연결되지 않았기에. 경기도 파주 쪽 도라산역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둘 다 사업중단으로 만들어 놓기만 하고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
또한 남북관련 문제가 나오면 민통선 또는 DMZ 지대라 관광이 중지되면 이곳을 찾아가려던 관광객이 허탕 치기를 수시로 일어난다. 앞으로는 박물관과 최북단 역은 민통선 내 DMZ등에 관람시설을 세우지 말고 전망대 외에는 민통선 밖에 세워서 남북문제가 생기게 되더라도 관광할 수 있는 장소로 해야 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고 일부라도 위안이 될 수 있고 철도여행 최북단 종착점을 이름 지어 본래 추구했던 기능을 다할 수가 있으며 역사적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차 여행자들의 최북단 역은 제진역도 아니고 민통선 밖으로 하고 후에 통일이 되거나 남북 교류가 되어서 북한 감호역까지 연결하며 이후 북한. 함흥. 길주. 나선.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 모스코바 유럽으로 나갈 수 있다.
또한 남서쪽으로는 훈춘. 연길. 장춘. 북경. 상해. 홍콩까지 연결할 수가 있다. 그 외 서쪽으로는 베이징. 시안. 청두. 동남. 아시아로 까지 철도여행이 가능해진다. 통일전망대와 해금강을 오갈 수 있는 것은 갈매기와 산새들뿐이다. 동해와 맞닿은 군사분계선에는 갈매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언제 우리는 남북을 오고 갈수 있는지 그날이  염원해 본다.

지난 5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동해선 최북단 기차역인 함명준 고성군수와 함께 제진역을 방문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 및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정부 또한 지난 4월 제진역~남강릉역 110.9㎞ 구간을 단선 전철로 잇는 철도 건설 사업에 착수했다. 여기에 북측 구간이 정비되면 부산~두만강 종단철도가 완성된다고 했다.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개별관광이 시작되면 분명하게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가 되고 고성 등 접경지역 경제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러면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도 추진해 새로운 한반도 경제 질서를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동북아 평화와 발전의 디딤돌이  될것" 이라며 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 방법 찾겠다"했지만 어느 세월에 생기겠나 싶었다.

동해선 철도남북출입사무소 지나 해변을 돌아보았지만 철로는 보이지 않았다 남북 철도는 다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민통선 따라 최북단 마을 명파리 마을을 진입하니 “동해북부선 간성역 선정을 희망하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3년 전만 해도 고성 전망대를 가려면 명파리 최북단 마을로 지나갔다. 그러니 지금은 속초에서 곧바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고속화 도로가 생겨 명파리는 최북단 마을 이름에서 점차적으로 잊혀져 가고 있다)

최북단 명파리마을입구 우회도로가 생경 예전과 다르게 찾는 사람이 없다

그외 연결 가능성 있는 명파리 해수욕장을 해변을 찾아갔다. 그러나 어디에서 철로자라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명파리 마을로 나와 동네 어르신들에게 물어물어 옛 철로 노선을 가늠하고 찾아가던 중 정자가 높이 세워진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쉼터로만 표기되어 있어 그곳이 기차 길이였다는 사실이 몰랐다. 그러나 높은 둔 턱이 기차 길이였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 동안 수 없이 지나갔지만 이전에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은 곳에서 뜻밖에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이곳은 군사도로라 민간인 출입이 금지 되었었고 여행객에는 그리 볼거리도 없는 외진 길이였을 뿐이다. 2년전만 해도 비포장 도로였고 민통선 지역이라 다리는 있어도 이름이 없었으나 지금은 이름이 생겼고 도로는 2차로로 포장되어 있다. 누군가 최전방 민통선 따라 이동이 가능하나 아직 인적이 드문 곳이라 여행객들은 그리 지나가지 않으니 알고 찾아간다면 이색적이고 조용한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다. 그 길을 가더라도 그 동안 정자 하나만 달랑 보이는 것으로 보여 모두가 그냥 지나친 것이다.

철로자리에 세워진 정자 동행북부선에서가장 높은 지대다


선로가 끊어진 그 자리는 정자와 이어진 임의 철로가15M 가량 놓여 있고 그 앞으로 하천을 건너 철로가  끊어진 둔덕에 철마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정자에 걸터앉아보니 정자 레일바이크를 타고 북으로 가는 기분이 든다. ㅋ 동내 분들의 말에 위하면 이곳은 동해북부선에서 가정 높은 지대라고 한다.

다리가 놓였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아래는 전차 진로를 막고자 콘크리트 만든 두툼한 기둥만 하천을 가로 막고 있었다. 동네 어르신에게 철로 연결선을 물으니 고성 가는 길 언덕 아래 예전에 기차가 다녔던 철로 터널이 있다고 한다. 곧바로 터널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마치 보물을 찾아 떠나는 느낌이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감추어진 그 터널을 찾고가 하천 숲길을 500m를 헤치고 들어서니 드디어 터널이 반기었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 같은 탐험가로서 느끼는 감정을 맞보았다.

1950년대 남북이 이어졌던 동해북부선 고성터널


터널로 접근하는 길은 질퍽했다. 그 동안 인적이 손 닿지 않은 곳이기에 많은 퇴적물 쌓이고 작은 냇물이 흐른다. 질퍽함을 만들어져 있어 발목까지 빠졌다.
터널입구는 철 구조물로 막아 놨다. 선로는 터널이나 밖에도 보이지 않는다.
터널 이름이 있을 만한 표지판은 떨어져 없어졌고 터널입구는 총탄 자욱이 몇 개 보였지만 확실치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오래 전에 군인들이 철로를 떼어내 팔아먹었다고 한다.
한참 동안 주변을 돌아봤지만 철로의 흔적은 없었다. 있을 만한 철길은 가늠하였지만 농가와 낮은 둑에 감나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터널 가는 길에 외딴 농가에서 할머니께서 생강을 씻고 계시기에 인사를 드리니 김장 준비를 한
다고 하신다. 철로에 관해 여쭈어 보니 피난 시절 기차를 탔느냐고 여쭈어 보니 기차는 타보지 못했다고 하신다. 자신은 군인차를 타고 6.25때 피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살고 있다고 한다. 연세를 물으니 많다고만 하시고 끝내 밝히지는 않으셨다. 가늠하여 90세가 넘은듯하다
길가에는 임자 없는(?)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그 감이라도 하나 먹어보고 싶다 하니 할머니는 길가에 감들은 떫으니 집안 마당에 있는 감나무는 단감이라 그냥 따가라 하시더니 터널을 다녀온 사이에 할머니께서 집적 10여개를 따 놔주셨다. 길가 감나무는 떨어서 한집 베물고는 뱉어냈지만 할머니집 단감은 정말 달콤했다.

이런게 시골 정감이라 했던가 어딜 가든 풍요론 가을여행의 진미이다.  반대편 터널도 찾아가보고 싶었지만 다음은 건봉사로 향하기에 동해북부선 철로 따라가거나 찾기는 여기서 멈추어야 했다.

1-2부 다음 편은 실제상황으로 민통선 등에서 긴장되고 스릴있는(?) 지뢰를 발견되는 것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행팁 [서울에서 출발을 기준]

 KTX 타고 속초역을 지나 버스를 타야만 한다. 고성통일전망대는 개인차량이 있어야 방문이 가능하다. 개인 차량이 없다면 관광이 불가하다. 그래서 나는 고성통일전망대를 홀로 여행할때면 승용차를 히치해서 같이 들어갔다.  고성통일 전망대에 시간마다 관광버스로 함께 이용하도록 하며 될 것을. . 우리가 힘을 모아 이에 함께 의의 제기 합시다.



공동취재기자:
강원규 기자[55555km@gamil.com]
  • 글쓴날 : [2020-12-01 01: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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