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출입증을 받고 통일전망대를 향했다.
그런데 얼마 전 북한에서 주민이 넘어온 월남사건으로 고성통일전망대가 출입을 금지되다 다시 OPEN 되어서인지 이에 따른 검문이 깐깐해 졌다. 경계 실패하고는 통일전망대 방문중인 관광객들에게 책임을 묻는 듯 출입자들에 대한 규제와 주의사항들이 더 해졌고 언론차량을 통제하거나 DSLR 카메라 반입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경계 실패에 대한 더 이상의 비난을 막기위한 방안인것 같다. 몇 일후 국방부는 지뢰 때문에 곧바로 민통선내 산을 수색할 수가 없어 지연된 것이라고 발표를 했다. (2019년 7월에서 해안에서 북한 목선이 발견되었고 2020년 11월 또 한차례 민간인 이 월남자들이 끊이지 않아 탈북 루트로 떠오르면서 동부전선이 무너졌다고들 한다) 그럴만했다. 통일 전망대 가는 길 곳곳이 지뢰 미확인 지역이라는 경고표시판이 있다. 이곳은 지뢰지역이고 작전지역이기에 민간인 신분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지역이다. 북한주민 월남자는 민통선의 지뢰밭을 돌아다니고도 무사했던 것이다.
필자는 1998년 11월 28일
아들과 함께 금강산을 방문했었다. 금강산으로 첫 출항한 현대 금강호를 타고 장전항에 도착, 당시 정주영 회장도 만나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문화재청장까지 지낸 유홍준 명지대 교수와 룸메이트처럼 함께 금강산. 비룡폭포. 만물상. 해금강 등을 함께 여행했다. 2003년부터는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으나 2008년 7월 대한민국 국적 관광객이 조선인민군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강산 여행은 중단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득 이 철도는 어디로부터 이어져 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철로 길을 추적하기로 했다. 이번 탐사여행에 옛철도를 찾아보는 것을 즉석에서 하나의 과제로 삼았다. 고성 전망대를 뒤로 하면서 철도노선을 찾아보니 동해북부선인 제진역을 만날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북단 역으로 되어있다. 위치는 동해 북부선의 초구역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1950년 폐지되었고 민통선 이북이라 허가가 있어야 들어갈 수가 있다.
철도가 끊어진지 54년, 1924년 개통한 동해북부선은 6.25 한국전쟁 이후에 군사 분계선이 그어지고 1967년 양양과 속초구간도 폐지되어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재진역을 출발하면 북한 쪽 첫 번째 역인 감호역으로 향하게 된다. 이어서 현재 북한에서 지명된 금강산청년역을 지나면 실제 고성군 고성역은 북한의 장전읍에 위치하고 있다. 6.25이전에는 38선으로 갈라져 고성군은 북한 쪽이고 금강산을 접하고 있었다. 당시 속초시, 양양군, 설악산도 북한 땅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1940년 18일간의 수학여행 詩로 남긴 심연수의 기억들이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서 10일부터 15일까지 6일 동안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열린다.「일만리여정을 답파하고서」, 금강산 여행기 「오늘의 갈 길은」, ‘금강산 관광스탬프첩’ 등을 볼 수 있다. 설악산은 아주 조금 금강산을 닮아있으니 금강산을 못 가보신 분들을 위해 설악산을 추천한다. 그러나 빼어난 금강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남북출입국사무소를 겸한 고성군 제진역은 고성통일전망대를 가기 전에 민통선내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와 한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제진역은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에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경로로 두 차례 모두 동해도로남북출입사무소를 거쳐 갔다.
그러나 철도는 연결되지 않았다. 경기도 파주쪽 도라산역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만 둘 다 사업 중단으로 만들어 놓기만 하고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 또한 남북관련 문제가 나오면 민통선과 DMZ 지대는 관광이 중지되어 이곳을 찾아가려던 관광객이 허탕 치기를 수시로 일어난다. 앞으로는 박물관과 최북단 역은 민통선과 DMZ에 관람시설을 세우지 말고 전망대 외에는 민통선 밖에 세워서 남북문제가 생기게 되더라도 관광할 수 있는 장소에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고 일부라도 보면서 위안이 될 수 있고 철도여행 최북단 종착점은 새로이 이름 지으면 본래 추구했던 기능을 다할 수가 있으며 역사적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차 여행자들에게 최북단 역은 제진역도 아니고 민통선 밖으로 하고 후에 통일이 되거나 남북 교류가 되면 북한 감호역까지 연결되니 이후 북한. 함흥. 길주. 나선.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 모스코바 유럽으로 나갈 수 있다. 또한 남서쪽으로는 훈춘. 연길. 장춘. 북경. 상해. 홍콩까지 연결할 수가 있다. 서쪽으로는 베이징. 시안. 청두. 동남. 아시아로 까지 철도여행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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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함명준 고성군수와 함께 동해선 최북단 기차역인 제진역을 방문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 및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정부 또한 지난 4월 제진역~남강릉역 110.9㎞ 구간을 단선 전철로 잇는 철도 건설 사업에 착수했다. 여기에 북측 구간이 정비되면 부산~두만강 종단철도가 완성된다고 했다.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개별관광이 시작되면 분명하게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가 되고 고성 등 접경지역 경제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러면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도 추진해 새로운 한반도 경제 질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금강산 관광 재개 방법 찾겠다."했지만 어느 세월에 생기겠나 싶었다.
제진역은 관람으로 끝나지만 철로가 연결된다면 후에 금강산. 해금강을 지나 함흥. 두만강역도 지나 러시아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될 것이다. 동해선 철도남북출입사무소 지나 해변을 돌아보았지만 철로는 보이지 않았다 남은 철도는 다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민통선 따라 최북단 마을 명파리 마을을 진입하니 “동해북부선 간성역 선정을 희망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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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개별관광이 시작되면 분명하게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가 되고 고성 등 접경지역 경제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러면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도 추진해 새로운 한반도 경제 질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금강산 관광 재개 방법 찾겠다.”했지만 어느 세월에 생기겠나 싶었다.
제진역은 관람으로 끝나지만 철로가 연결된다면 후에 금강산. 해금강을 지나 함흥. 두만강역도 지나 러시아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될 것이다. 동해선 철도남북출입사무소 지나 해변을 돌아보았지만 철로는 보이지 않았다 남은 철도는 다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민통선 따라 최북단 마을 명파리 마을을 진입하니 “동해북부선 간성역 선정을 희망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옛 철도길을 찾아내다
고성전망대를 뒤로하고 옛철도 노선을 가늠하고 찾아가면서 동네 어른신들에게 물어물어 철로자리를 찾아냈다. 동네 어르신이 이야기 해주시 곳이 쉼터로만 표기되어있는 곳, 높은 둑방 위에 정자가 보였다. 그 동안 수 없이 이곳을 지나갔지만 철도길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은 곳이었다. 2년 전만 해도 이곳은 민통선 안쪽이고 군사도로라 비포장이었고 다리는 있어도 이름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름이 생겼고 2차로로 포장되어 있다.
누구든지 최전방 민통선 따라 이동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이 길로 지나가지 않으니 알고 찾아간다면 조용한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다.
필자도 그 동안 정자하나만 달랑보여 그냥 지나친 것이다. 선로가 놓였던 자리 가운데는 정자가 세워져 있고 그 앞 하천 건너로 철로가 끊어졌음을 알게 되었고 둔덕에는 역전이름과 기차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내분들의 말에 위하면 이곳은 동해북북선에서 가정 높은 지대라고 한다. 다리가 놓였던 자리는 흔적도 없어졌고 아래는 전차를 막아대는 방어기둥만 가득했다. 동네 어르신에게 철로 연결선을 물으니 고성가는 길 언덕 아래 예전에 기차가 다녔던 터널이 있다고 한다. 곧바로 터널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마치 보물을 찾아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감추어진 터널을 찾고자 숲길을 헤치고 들어서니 드디어 터널이 발견했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같은 탐험가로서 느끼는 감정을 맛보았다. 터널로 접근하는 길은 질퍽했다. 그동안 인적이 닫지 않은 곳이기에 많은 퇴적물이 질퍽함을 만들었고 작은 냇물도 흐른다. 터널입구는 철 구조물로 막아 놨다 철로는 터널이나 밖에도 보이지 않는다. 터널 이름이 있었을 만한 표시판은 떨어져 없어졌고 벽면에는 오래전 낙서가 새겨져 있다.
터널입구는 총탄 자욱이 몇 개 보여지만 확실치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오래전에 군인들이 철로를 떼어내 팔아먹었다고 한다. 한창동안 주변을 돌아봤지만 철로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었다. 주변에 있을 만한 철길은 찾아보았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가늠한 곳에는 농가와 감나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터널로 찾아 가는 길에 외딴 농가 할머니가 생강을 씻고 계시기에 인사를 드리니 김장 준비를 하고 계셨다. 마당과 길가에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하나 먹어보고 싶다하니 할머니는 길가의 감들은 떫으니 잡마당에 있는 감은 단감이라 하시면서 그냥 따가라 하시더니 터널을 갔다 온 사이에 10여개를 따놓으셨다. 철로에 대하여 여쭈어 보기도하고 6.25 피난시 기차를 탔는냐고 여쭈어 보니 군인들 차를 타고 남쪽 어딘가 피난갔다가 다시 돌아와 살고 있다고 한다. 연세를 여쭈어보니 많이 먹었다고만 하시고는 끝내 나이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90세가 한참 넘은듯하다. 할머니가 주신 감으로 인하여 시골 정감을 맛본 풍요로운 가을 여행이었으며 고향의 향수을 느꼈다.
이어서 반대편 터널도 찾아가보고 싶었지만 다음은 건봉사로 향햐기에 여기서 동해북부선 이어찾기는 멈추어야 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테마여행으로 “옛 철로를 찾아서” 라는 여행도 하고 싶다.
PS 민통선과 DMZ 여행을 희망하거나 이에 관한 방법과 코스를 알고 싶은 분은 댓글 주시면 됩니다. 또는 네이버 밴드 “한국철도여행진흥협회” 회원가입하거나 네이버 밴드 세계일주. 국토대장정. 배낭여행. 오지여행 검색해서 방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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