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타운 ~ 진짜 최남단 아글라스까지[1편]
  • 해안선 따라 700km 도보 탐험
  •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케이프타운 ~ 아프리카 진짜 최남단 아글라스까지[1편]

      해안선 따라 700km 도보 탐험


    여행자 : 강한별. 강원규 글, 사진 : www.koreaman.com

    케이프타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입법 수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영어로 Republic of South Africa, RSA, 아프리칸스어로는 Republiek van Suid-Afrika라 불리며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자리한 공화국이며 줄여서 남아공이라고도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5,900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보유하며 세계에서 24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3개의 수도를 가지고 있는데, 프리토리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행정 수도이고, 블룸폰테인은 사법 수도이며, 케이프타운은 입법 수도이며, 요하네스버그는 최대 도시로 나누어져 있다. 국민의 80%는 흑인 혈통이며, 다양한 아프리카계 언어들을 사용하는 민족들로 나뉘어 있으며 나머지 20%는 대부분 유럽인들, 그리고 최근에 이주해온 아시아 계열의 국민들이이고 대한민국에서 이민 온 교포들도 상당수 정착해서 살고 있다.

    우리는 걸어서 세계일주를 하기위하여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으로 향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남부 해안선 2,798킬로미터를 점하고 있으며, 남대서양과 인도양에 동시에 국경을 걸치고 있다. 북부에는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가 있으며, 동부와 북동부에는 모잠비크와 에스와티니가 있고, 내부에 내륙국인 레소토가 자리하고 있다. .

    정치적으로는 20세기 내내, 국민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흑인들은 기득권인 소수 백인들에 맞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해왔고, 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근현대사의 중추를 이룰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1948년에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당은 최악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공공연히 실시하였고, 이후 아프리카 국민회의 등이 이끄는 국내외 운동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1980년대부터는 점차 차별 정책이 완화되기 시작하다 1994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참여 자유총선거에서 만델라가 대통령에 선출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는 종결되었다. 350여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켰다.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인종과 언어에 상관없이 동일한 정치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며, 법치주의와 평등의 가치가 제대로 도입되게 되었다. 이후 민족적 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국가로 발전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커먼웰스와 G20의 회원국이지만 아직까지는 개발도상국이다.

    남아프리카의 역사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류 유적지를 가지고 있을 만큼 인간이 거주한 지 오래된 국가이다. 고고학자들은 가퉁 지방에 있는 동굴들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간 유골들 중 하나를 발견하였으며, 그 외에도 여러 지방들에서도 거주지 유적, 사냥터 유적, 인간 유골들을 다수 발견한 바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당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적어도 약 3백만년 전부터는 남아프리카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호모 에렉투스, 호모 로데시엔시스, 호모 에르가스테르, 호모 하빌리스, 호모 날레디 등이 살고 있었으며, 또한 현생 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도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한다.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 남부에 최소한 17만년 이상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며 이후 남아프리카에서는 철제 농기구와 무기를 사용하는 반투족이 점차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한다.

    이들은 4세기와 5세기 사이에 현재 보츠와나와 짐바브웨 사이에 있는 림포포 강 남부까지 빠르게 이르렀으며, 이후 이 곳에 본래 살고 있던 코이코이족과 산족들을 흡수한 후 끊임없이 남진을 계속하였고 반투족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남진한 부족 그룹은 코사족으로, 그레이트피시 강까지 도달하며 철기 문화를 퍼뜨리고 토착 민족들을 흡수해 들였다 한다.

    포르투갈인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아프리카 남부에 원정

    1487년 포르투갈 탐험대가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남아프리카 지역에 도착했을 즈음, 남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대부분 약 1,000여 년 전쯤에 아프리카 타 지방에서 이주해온 반투족들이었다. 이들은 크게 코사족과 줄루족으로 나뉘어 살고 있었다. 다아스는 12월 4일, 그는 현재 나미비아 지역에 있는 왈비스 만에 상륙하고는 아프리카 대륙 서안을 따라 남진을 계속하다 1488년 1월 8일 이후에는 격렬한 폭풍에 가로막힌 탓에 해안가에서 바다쪽으로 떠밀려 나와, 아프리카 최남단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아프리카 동부 해안가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1488년 5월에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가기 위하여 길을 가고 있던 도중에는 아프리카 최남단을 발견하는 데에 성공하여, 이 곳에 ‘폭풍의 곷’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였다. 디아스의 이야기를 들은 당시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는 그가 개척한 항로가 부와 황금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 아프리카 최남단의 이름을 ‘희망봉’이라고 다른 이름을 붙였다.

    케이프타운(Cape Town)

    케이프타운 시청사

    케이프타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케이프타운(영어: Cape Town)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입법 수도이다. 아프리칸스어로는 카프스타트(Kaapstad)라고 부른다. 케이프타운은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에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항로의 주요 거점이었다. 요하네스버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고 도시 자체 인구는 500만명 정도다. 테이블 베이에 접한 이 도시는 항구로 유명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이블 마운틴과 희망봉 등을 포함한 케이프 플로럴 킹덤에 속한다. 테이블 마운틴 위에서 1994년에 흑인 최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가 유페된 ‘로벤섬(Robben Island)’이 선명히 바라보인다.

    케이프타운은 원래 아프리카 동부, 인도, 동아시아 무역에 종사하는 네덜란드 선박의 식량 기지로 건설되었으며, 그것은 수에즈 운하가 1869년에 건설되는 200년 이상 지속되었는데 얀 반 리베크가 1652년 4월 6일 도착하여 남아공 최초의 유럽 식민지를 개척한 후 케이프타운은 빠르게 성장하는 유럽 최초의 전초 기지가 되었다.

    인구의 48.13%를 유색인종, 흑인 31%, 백인 18.75%, 아시아계 1.43%이다. 언어는 아프리칸스어, 28.7%가 코사어, 27.9%가 영어, 0.7%가 소토어, 0.3%가 줄루어, 0.1%가 츠와나어, 0.7%가 다른 비공식 언어를 집에서 말하고 있다한다. 거주자의 76.6%가 기독교인이며, 10.7%가 무교, 9.7%가 무슬림, 0.5 %가 유대교, 0.2%가 힌두교도, 2.3%가 다른 종교 또는 불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테이블 마운틴

    테이블 마운틴은 1000m 이상의 높이로 거의 수직 절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이 산에 이따금 얇은 구름이 걸리면, 그 모습이 "테이블"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이 반도를 관통하는 산맥이 대서양에서 남쪽으로 튀어나와 희망봉이 되었다. 케이프타운 안에 있는 300m를 넘는 봉우리는 70개이다. 케이프 타운의 많은 교외 주택 지구와 본토를 연결하는 케이프 평원이 있다. 테이블 마운틴은 한때 섬이었다고 한다.

    케이프 반도
    겨울은 춥고, 평균 최저 기온은 섭씨 7 ℃이며, 동남에서 강풍이 자주 불어 오염을 밀어내고,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케이프 닥터〉라고도 부른다. 여름 기온은 온화하고, 평균 최고 기온은 26 ℃이다.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발착하는 남아공아국 제2의 공항이며, 케이프 지역의 여행자들에게 중요한 관문이다. 대부분 국내 도시로 직항 연결편이 있으며, 많은 국제도시로 연결되는 직항편도 있다. 유럽과 중동을 경우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말레시아를 경유하는 노선이 가장 빠른 편이다.

  • 글쓴날 : [21-05-28 10:32]
    • 다른기사보기 강원규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