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는 대한민국 끝이자 시작인 최남단에 위치한 천연기념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며, 모슬포항에서 11km 정도 떨어져 있다. 면적은 약 0.3제곱미터, 해안선의 길이는 4.2km이고, 최고점은 39m이다. 2021년 기준 상주 인구수는 20여가구 30여명이다. 1883년(고종 20) 대정에 살던 김씨 일가가 대정 현감으로부터 개간 허가를 받아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명칭 유래를 보면 마라도는 20세기 이후부터 한자로 표기하면서 마라섬을 마라도(馬羅島)라고 표기하였으나, 이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확실치 않으나 관(冠)의 뜻을 지닌 만주어 차용어 ‘마흐래’와 유사하다는 설이 있으나 일제 강점기 지형도에 마라도(馬羅島)로 표기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섬 마라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바다 위에는 3400(유인도 467개)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이 섬들이 우리나라 영해 범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섬 중에서 가장 동쪽에는 독도, 가장 남쪽에는 마라도, 서남쪽은 가거도, 가장 서쪽에는 격렬비열도가 있다. 우리가 마라도를 방문할 때 자연 자원과 함께 국토 최남단의 상징성, 해양 자원의 가치를 생각하고 간다면 더욱 의미 있는 마라도 여행이 될 것이다.
짜장면으로 유명한 섬 마라도
제주도는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지만 제주도 안에는 또 다른 섬 마라도가 존재한다.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는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광고로 유명해진 탓에 누구든지 마라도 여행을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점차 그 상품값을 못한지 오래고 기계적이다.
국토종단 출발지
1987년 부터 매년 방학때이면 수 백명의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들이 찾아와 단체로 국토대장정을 마라도에서 시작한다. 그 시초는 한국소년탐험대이며 현재는 사단법인 국토대장정협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이 단체로 하여금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마라도 찾는 이가 많아져 널리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마라도 지역은 여자들이 물질 외에 마땅한 생업수단이 없고, 남자들은 낚싯배 영업을 해야 하는데 배를 정박시킬 선착장 시설이 없어서 섬 사람들이 배를 관리하기 어렵다. 더 쉽게 말해 배를 가질 수 없어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마라도는 농경지가 전혀 없어 농사를 지을 수도 없기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자장면집, 낚시 민박과 식당으로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
마라도의 자연 환경
마라도는 한반도에서 해저를 타고 뻗어 내려가 대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맺혀 있는 우리나라의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자 태평양에서 배를 타고 대륙으로 들어오는 시작점이 마라도이다. 끝과 시작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연간 6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마라도는 대한민국의 ‘땅 끝’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아름다운 경치와 다양한 해양생물, 보호 가치가 있는 해양생태계 등을 가져 2000년에 섬 전체를 천연기념물(제423호)로 지정되었다.
봄이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푸릇푸릇한 잔디가 섬을 푸르게 만든다. 오래전 심은 해송도 있지만 염분 영향으로 크지는 못하지만 물을 주지 않아도 잘 버텨나간다. 그외 선인장 백련초가 섬주위 자라고 있으며 마을 한복판에는 원주민이 심어놓은 뽕나무가 오래도록 터를 잡고 버티고 있다. 그리고 수종이 새들이 있으나 까지들이 터를 잡고 있다.
가을이면 억새풀이 무성하다. 마라도는 바다 속에서 화산이 분화하면서 이루어진 섬으로 생각하지만 분화구는 볼 수 없어 아쉽다. 섬 전체가 항공모함 모양이며, 해안선은 거센 해풍과 파도의 영향으로 기암절벽을 이루고 복합용암류로 겹겹이 쌓여 현무암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배가 닿는 선착장 부근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마라도는 전체적으로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태풍 등으로 파도가 거세게 치는 날이면 온통 섬을 덮어 버릴듯 한다. 작은 섬이지만 식생이 다양하여 96종의 식물이 서식한다. 동쪽 해안과 북서쪽 해안 및 남쪽 해안은 높이 20m 정도의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파도가 심해서 생긴 해식 동굴이 여러 개 있다. 나무는 별로 없고 대부분 초지다. 섬의 중앙부에 약간의 나무가 심겨진 숲이 있다.
마라도의 평탄한 지형
그러나 바다의 해산식물은 매우 풍부하다. 난대성 해조류가 잘 자라며 녹조류 · 갈조류 · 홍조류 등 총 72종이 해조류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일 년 내내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데 봄이면 겨울 동안 거센 파도와 싸우면서 자란 자연산 미역과 톳이 넘치고, 여름에는 고둥과 오분자기, 가을에는 소라가 겨울에는 전복과 해삼이 많이 잡힌다. 마라도 주변 바다의 조류는 거세기 때문에 자리돔과 벵에돔이 많이 나며 한결 더 맛이 난다.
마라도는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청정 자연환경보호 특구로 지정된 곳으로 자연적인 해식동굴과 바위는 어류들의 집이 되고 해산물 천국을 이룬다. 인공적으로 만든 볼거리는 별로 많지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바위와 해식동굴, 장군바위, 절벽은 늘 바라보아도 즐겁고 신기하기만 하다. 제주도는 자연 환경 보호와 자연 그대로를 보여 주기 위하여 전동카트를 마라도 밖으로 퇴출시켰다. 이제 주민들이 각기 1대씩만 허용하고 있다. 마라도에 와서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면서 편안하다. 최남단에 발도장 찍는다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 될것이다.
마라도의 불, 물, 발 상황
한때는 섬 주민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불, 물, 발이다. 이제는 전기는 태양광 발전으로 대처되어 24시간 공급받고 있으며 물은 제주도내에서 생산되는 생수를 보급받아 해결한다.
물은 바위로 구성된 탓에 비가 오면 바다로 흘러내리고 샘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가뭄(한발)이 오면 땅이 메말라 버린다. 마라도를 돌아보면 곳곳에 샘을 만들거나 해안석틈에는 자연적 물웅덩이가 있다.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도 하고 지붕에서 빗물을 받아 정수통에 넣어 식수로 쓰거나 생활 용수로 사용하였다.
마라도의 이동수단
마라도는 제주도 본 섬과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섬이지만 풍랑주의보 등으로 자주 발길이 묶이는 곳이다. 평소에도 동중국해를 거쳐 온 파도가 만만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대양과 마주하는 첫 번째 섬이다 보니 맨 먼저 맞이하는 파도가 탐탁할리 있을까. 하늘에서 보면 마라도는 꼭 항공모함처럼 웅장하다. 동쪽 끝 벼랑 위에 있는 등대는 조타실, 섬 한가운데 위치한 태양열 발전소는 함대의 동력 시설처럼 보인다. 파도를 앞으로 나아가는 물보라로 보인다. 마치 한반도 남단을 늠름하게 지키는 항공모함인 듯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마라도에 가려면 제주도의 서남쪽 끝에 있는 모슬포항과 송학산에서 여객선 또는 관광선을 타야 한다. 거리는 약5.5km로 배로 20분, 마라도는 11km 떨어져 있어 여객선으로 30~4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에 이르는 바닷길은 바람도 많이 불고 파도가 거칠어 풍랑주의보 등에 따라 자주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
하늬바람과 샛바람, 그리고 마파람과 높새바람 등이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곳으로 바람과 가파도와 마라도 사이 심해에서 부딛치는 해류로 인하여 항상 높은 파도가 일렁인다.
그래서 인지 가파도와 마라도는 이웃에 있는 섬이지만 정작 서로 간에 교류는 흔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마라도에서 진 빚은 갚아도(가파도) 되고 말아도(마라도)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그만큼 서로 자주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항상 파도가 심하고, 특히 겨울에는 날씨의 영향으로 결항되기 일쑤다. 특히 마라도는 지형상 정상적인 날씨에도 파도와 너울로 인하여 선박의 정박이 어려워서 다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마라도는 이러한 자연적인 장애물에 대비하여 선착장 시설은 섬의 사면의 4개소에 건설하여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여객선과 어선을 정박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부실한 선착장이라 항상 여개선 승무원이 승하차를 돕는다. 이제는 마라도에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각각 다른 배가 다닌다. 마라도는 하루 여섯 차례 쾌속선이 운항할 정도로 ‘죽기전에 가볼 곳‘으로 명소가 되었다.
마라도는 행정 구역이 가파도 가파리 소속이었다. 1981년에야 마라리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도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이다.
마라도의 역사적 배경
마라도는 가파도에 비교하면 아주 가난한 섬이었다. 가파도는 왕실의 종묘제례를 행할 때에 제물로 바칠 소를 기르던 섬이었지만, 마라도는 제주 목사가 귀양살이를 보낸 사람들이 살았고,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임시적으로 거주하던 곳이었다 한다. 개척 이전에 마라도는 인근 육지에 사는 사람들이 다소 신비하게 여겼으나 정작 입도를 꺼리는 금지의 섬이었다. 당시에 대정읍 사람들은 ‘망종(芒種) 이전에 마라도에 들어가면 흉년이 온다’고 믿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살림이 울창하고 해산물이 풍부했다고 한다. 한 겨울 파도가 심한 이곳을 드나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망종이 지나면 날씨가 좋아지면서 바람이 적게 불고 파도가 잔잔하여 이 시기에 마라도에 상륙하여 나무를 베고, 해산물을 채취해 갔다.
마라도에 사람이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살게 된 이후에도 주민들은 고단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1883년(고종 20)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대정읍 사무소에 소장된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제주 대정골에 살던 김성오 씨가 노름으로 일가가 파산되어 거처할 곳이 없게 되니 친척들과 상의하여 제주 목사인 심원택에게 마라도 개척을 요청했다. 다음 해에 정식으로 입도 허가를 받고 이주하게 되었다. 김씨의 개척 소식을 듣고 강씨, 이씨, 나씨 등 6세대가 이 섬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하였는데 섬에 처음 들어온 일행들이 밭을 일구려고 불을 놓고 불탄 자리가 농경지로 변했다. 전설에 의하면 고향이 그리운 어느 이주민이 달밤에 퉁소를 불었는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뱀들이 몰려와 놀란 주민들이 이 뱀들을 없애기 위하여 숲에 불을 놓았는데 그만 수천 년 세월 동안 자라난 원시림은 모조리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숲에다 불을 지르니 여기에 서식하고 있던 새들은 멀리 날아가고 그렇게 많던 뱀들은 꼬리를 물고 동쪽으로 헤엄쳐 갔다고 한다. 불길은 3개월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로 들린다. 수천 년 세월이 일시에 불에 타는 바람에 그때부터 뱀과 개구리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그 후 나무가 자라지 못한 땅이 되어버렸다.
나무가 사라지면서부터 섬에는 땔감용 목재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연료를 얻을 목적으로 소를 키웠다. 소똥을 가져와 넓적하게 만들어 돌담과 잔디밭에서 말린 뒤 나무 대신 땔감으로 썼다. 유목민들의 환경 적응을 보는 것 같다.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수염상어와 불범상어를 잡아다가 내장을 끓인 다음 기름을 만들어 등잔불을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마라도 섬둘러보기
여객선이 마라도 선착장에 닿으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쏟아져 내린다. 마라도의 첫인상은 선착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수 있다 그리고 모습으로 산도 없고, 나무도 없는 평평한 민둥섬은 남북 1.3km, 동서 0.5km, 해안선 길이는 4.2km인 섬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납작하게 생긴 특이한 섬이다. 최남단에 대한 감격도 없는 섬이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고도는 39m이다. 이자리는 유인등대 있었으나 현재는 새로운 등대를 세우기 위하여 공사중이다.
마라도의 할망당과 종교시설
마라도 선착장에서 내려서 좌측으로 조금 가면 마라도의 수호신인 할망당을 만난다. 이곳은 마라도의 대표적인 민속문화 유적인데 할망당(애기업개당)은 해녀들이 바다에서 고된 물질을 할 때마다 안전하게 보살펴주는 신으로 믿고 지금도 정성껏 모시고 있다. 할망당은 마라도 주민들의 일상사에 일일이 관여하고 있다고 믿는 초자연적인 마을의 수호신이다. 할망당의 전설이라고 하지만 우상 숭배가 심한 그 당시 실화에 가까운 슬픈 이야기라고 한다.
약 150년 전에 모슬포에 사는 해녀들이 풍선을 타고 마라도에 물질을 하러 들어왔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아이를 많이 낳아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때였다. 바다에서 전복과 해삼을 잡으며 물질은 해야 하는데 우는 아이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서 마라도에서 물질하는 동안 애를 볼 열네 살짜리 여자아이 ‘애기업개’도 태워서 들어왔다. 그런데 며칠 동안 풍랑이 거세어서 섬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우두머리 해녀가 꿈을 꾸었는데 애기업개를 제물로 바쳐야 바다가 잠잠해져 나갈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을 거라고 했다. 결국 해녀들은 마음이 아프지만 그 열네 살짜리 애기업개를 두고 가기로 했다.
“느가 려강 저 지성귀 거뒁 오라”(네가 달려가 저 기저귀 거둬 오렴). 바위에 걸린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에 사람들은 애기업개를 마라도에 떼어 놓은 채 목 놓아 부르는 소리를 뿌리치고 노를 저어 떠나버렸다. 그날 풍랑은 잠잠해져서 해녀들이 모슬포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계절이 한 차례 바뀌어 봄에 해녀들이 다시 마라도로 갔는데 애기업개는 모슬포가 보이는 언덕에서 앉은 자세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다.
마라도의 할망당제는 매달 음력 초이렛날 이곳 해녀들이 빠짐없이 찾고 있다. 평소에도 꿈자리가 좋지 않고 집안에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할망당을 찾는다. 할망당에 갈 때는 제물로 쌀밥 한 그릇과 과일, 생선 한 마리, 떡과 술을 올린다. 그리고 마음에 있는 소원을 빌면서 자애로운 할망신의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절과 성당, 교회도 있지만 최남단의 상징성만 존재하고 신도도 없어 관리자만 있다. 최남단 상징성으로 세워진 탓이다. 1980년대 절이 제일 먼저 생기고 교회, 성당 순으로 생겨 났다. 방문객중에는 이곳을 찿는 이는 몇 명뿐이다.
마라도의 장군 바위
마라도 최남단이란 비석 아래의 바닷가에는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장군바위가 하나 있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천신과 지신이 만나는 이곳은 마라도 주민들이 신성시하며 함부로 올라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장군바위에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은 하늘의 수호신이 강림하여 땅에서 사는 지신을 만나러 오는 장소로 주민들이 해신제를 지낸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의미조차 존재를 잃고 있다.
마라도 등대
절과 성당을 지나가면 마라도 유인등대가 나타난다. 마라도 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3월 처음 불을 밝혔다. 일본군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마라도에 상주하면서 마라도 등대를 군사통신기지로 이용했다. 국토 최남단의 마라도 등대는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희망의 불’로 불린다. 세계 각국의 해도(바다지도)에 제주도는 표기되지 않아도 마라도 등대는 표기될 정도로 이곳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는 새로운 등대를 건설하기 위해 공사중이라 새로운 등대가 기대된다.
빠삐용 절벽
섬 전체를 둘러보니 북쪽 한끝만 약간 경사져 바다와 맞닿아있을 뿐 섬 주위는 온통 절벽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불타버린 서까래 지붕이나 기둥처럼 색깔이 새까맣다 보니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철옹성 감옥을 연상케 한다.
섬둘레는 4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해안선 보다는 마을을 관통해서 돌아보는 것이 좋다.
마라도는 척박한 땅이라 크게 자란 나무가 없다. 바다 한가운데 있어 바람이 많이 부는 탓에 나무들이 높게 자랄 수 없다.
해안가는 검은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볼거리들이 있지만 관광객들은 만들어진 길로만 다녀 더좋은 볼거리를 놓치고 있다. 한편으로 해안가로 가게되면 길이 없어 거친 바위 위를 건너다녀야 하기에 위험하기도 하다
마라도는 제주도에서도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곳이어서 파도가 높아 해상교통이 막힐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바람의 풍향에 따라 이용할 수 있도록 4개의 선착장이 있다. 마라도에는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이 없는 연유로 그때그때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사방에 부두를 만들었다. 남동쪽의 장시덕(덕은 ‘바닷가’를 말한다), 남서쪽의 신작로, 북서쪽의 자릿덕, 북동쪽의 살레덕이 그 날의 풍향에 따라 주인과 객을 맞는다.
해안은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절벽은 거친 파도를 받아 해식동굴이 발달해 있다. 작지끝, 고래미통, 섬비물, 물 내리는 기정(기정은 ‘절벽’이라는 뜻), 남덕, 월남덕, 과재통, 성멀, 남대문바위 등 많은 바위와 동굴이 즐비하다. 북쪽 한끝만 약간 기울어 있을 뿐 섬 전체가 작게는 10m에서 크게는 40m 높이의 절벽으로 되어 있다.
마라도를 뒤로하고
마라도는 관광객들이 가서 머무는 곳이 아니라 왔다가 밀물처럼 몰려오고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다. 그래서 낮에 시끌벅적하던 섬 전체가 저녁에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제대로 된 선탁장이 없어 달리 배를 정박시키는 곳이 없다. 물론 배도 없다. 따라서 고기잡이하는 어민도 살지 않는다. 어민이 없는 섬다. 태풍이라도 불면 성난 파도가 6만5천 평의 마라도를 짠물로 뒤덮는다. 그래서 마라도는 곡식 한 알 건질 수 없는,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다. 주로 해녀들이 바다에 나가 전복과 소라와 해초를 따서 살아갔지만 현재는 관광객 상대로 장사로 먹고 산다. 이제는 유명한 관광지로 변해 장사와 민박을 통해 예전보다는 삶이 풍요로워졌다. 한때는 하루에 평균 2000여 명, 성수기 때는 3000~4000명이 찾아오는데 연간 찾는 여행객은 50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 곳이 요즈음은 그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타지역 사람들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없나 호기심으로 한 번쯤 찾아가 섬이지만 문화가 없는 섬이긴하지만 늘 마라도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그러나 하루밤을 묵는다면 어두은 달밤 바다는 시상의 영감을 얻게 되며 아침에 바라보는 제주도, 한라산 전망과 해돋이는 새로운 날을 보게되며 때에 따라서는 석양과 밤하늘의 천체는 천하일품이다.
그리고 해안가 바위틈에 1402년(태종 2) 5월 김사형 ·이무·이회 등이 작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용왕님 옥좌’도 찾아보는 것도 어떨까 한다.